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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6월 4일 월요일

<신사의 품격> 김은숙 작가, 왜 그랬을까?

- < 신사의 품격 > 함정에 빠진 미드 따라하기
- < 섹스 앤 더 시티 > 가 될 수 없는 이유

[엔터미디어=조민준의 드라마 스코프] 일일연속극을 보는 기분이었다. 적어도 4회까지는. SBS 주말특별기획 < 신사의 품격 > 이야기다. 벌여놓은 캐릭터들은 많은데 사건은 극히 일상적인 범주에서만 펼쳐졌다. 그리고 그 사건들은 로맨틱 코미디 장르의 드라마 서두에 값할 만한 임팩트를 제공하지 못했다. 말하자면 네 명의 형제가 등장하는 가족극 같았다고나 할까.





알다시피 < 신사의 품격 > 의 별칭은 '남성판 섹스 앤 더 시티'다. 방영 전부터 이 드라마의 성격을 각인시키는 데는 상당한 공을 세운 홍보문구라 하겠으나, 퍽 안타깝게도 바로 여기에 함정이 있다. 미드 < 섹스 앤 더 시티 > 의 상당수 에피소드들은 매회 완결되는 단편적인 이야기 구성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시즌을 넘나드는 긴 호흡의 서사는 그 도중에 조금씩 개입되다 때가 무르익으면 전면으로 부각되곤 했다(주인공 캐리와 빅의 오랜 애증이라든지). 말하자면 시트콤에 가까운 형식이라는 건데, 선명하게 대비되는 네 명의 메인 캐릭터를 배치한 이상 어쩌면 불가결한 선택에 가까워 보인다. 캐릭터 플레이(에피소드)와 긴 호흡의 서사 사이의 태생적인 갈등을 봉합하기 위해서는.

< 신사의 품격 > 초반부의 딜레마는, 이 캐릭터와 서사라는 별개의 떡을 양손에서 놓지 않으려 안간힘을 쓴 데 있다. 이를테면, 시청자들이 네 명의 캐릭터를 미처 제대로 소개받기도 전에 서이수(김하늘)가 등장한다. 그리고 곧바로 김도진(장동건)과 서이수, 임태산(김수로), 홍세라(윤세아)의 사각관계가 중심이 된 긴 호흡의 서사가 시동을 건다.

이때부터 캐릭터와 서사가 서로의 발목을 잡는다. 진도를 좀 나가려하면 캐릭터 플레이가 멈춰 세우고, 캐릭터를 보여주려는데 서사가 조급증을 낸다. 어느 한 쪽도 홀대할 수는 없는 고로, 준비되어 있던 또 다른 거대서사(출생의 비밀과 관련한)를 당겨쓰기도 곤란해졌다.

그러니까 < 신사의 품격 > 초반 4회에서 김도진을 비롯한 몇몇 캐릭터가 떠 있는 것처럼 보이거나, 이야기가 지지부진해 보인 것은 대체로 이러한 딜레마에 기인한 바가 크다. 사각관계의 인물들을 놓고 일상적인 소동극만 반복한 것도 달리 뾰족한 수가 없었던 까닭이다. 하지만 대개 이런 문제들은 시간이 약일 때가 많다. 긴 호흡의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탄력을 받으면 해결될 수도 있는 문제라는 건데, < 신사의 품격 > 의 초반 세팅은 이 대목에서도 자그마한 회의를 낳는다. 바로 네 캐릭터의 방향성에 관한 것이다.





다시 < 섹스 앤 더 시티 >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이 드라마의 네 주인공인 캐리, 샬롯, 미란다, 사만다는 비록 친구라고 해도 판이하게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다. 마치 동세대 여성들의 네 가지 유형, 그 화신과도 같은 캐릭터들은 각자의 에피소드에서는 물론 이들이 함께 등장하는 대목에서도 상당한 화학작용을 보여준 바 있다.

그에 반해 < 신사의 품격 > 에 등장하는 네 남자 캐릭터의 경계는 상당히 흐릿하다. 개중 유일한 유부남인 이정록(이종혁) 정도를 제외하면 나머지 세 친구는 심지어 한 사람의 다른 자아들처럼 보일 지경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김은숙 작가의 지난 드라마들 속 남주 캐릭터의 분리된 자아라고 할까. 왕자병 차도남에(김도진), 일에서는 리더십도 뛰어나지만(임태산), 트라우마가 있는(최윤 - 김민종)…, 합쳐놓으면, 어디서 많이 본 인물 아닌가? 김주원이든 한기주든.

이러한 포석의 이유 또한 명확해 보인다. 어차피 20부작에 불과한 드라마를 개성 충만한 네 명의 사두마차에게 맡겨 버렸다가는 이야기가 산으로 가지 말란 법도 없으니까. 하지만 캐릭터의 매력을 분산시켜 버린 이러한 전략이 향후의 전개에 도움이 될 것인지도 장담하기 어려워 보인다.

< 시크릿 가든 > 의 힘이 그저 판타지스런 서사에서만 비롯되지 않았다는 것은 말하지 않아도 알 터. 게다가 모처럼의 40대 로맨틱 코미디에서 고작 다운그레이드 버전의 김주원 리바이벌만을 만나야 한다는 것도(심지어 다들 나이가 8살씩이나 많은데도 불구하고) 다소간 김빠지는 노릇이다.

칼럼니스트 조민준 zilch92@gmail.com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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