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당일, 약속 장소인 홍대 앞 파스타집에 먼저 도착했다. 잠시 후 '훈남' 포스를 풍기는 한 남자가 들어왔다. 훤칠한 키에 적당히 근육이 잡힌 체형, 거기다 서글서글한 눈매와 갸름한 턱선까지…. 누가 봐도 훈남이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이 남자가 바로 백재현(43)이다. 데뷔 후 줄곧 따라붙던 '못생기고 뚱뚱한 개그맨'의 캐릭터로 살아온 백재현의 놀라운 변신이다. 순간, 기자의 눈을 의심하기도 했다. 체중 120kg의 거대한 몸집으로 털털한 웃음을 보여주던 과거의 백재현이 아니었다. 8개월여에 걸친 다이어트로 40kg을 감량하고, 이어 양악과 성형수술을 감행하며 180도 바뀐 외모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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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외모가 바뀐 후 가장 달라진 점이 뭔지 아세요? 바로 사람들의 시선이에요. 과거에는 사람들이 저를 편안하게 혹은 함부로 대한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는데, 지금은 말 한마디라도 친절하고 따뜻하게 해주세요. 이런 대우가 처음이라 무척 기분 좋으면서도 당황스러워요(웃음)."
이대로 방치하면 앞으로 6년 남았다?!
백재현은 요즘 데뷔 후 처음으로 '연예인'이라는 호칭을 듣는다고 했다. 그전까지는 그냥 '개그맨'으로 불렸었고 그럴 때면 백재현은 사람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날선 말들을 서슴없이 날리곤 했다. 그랬던 그가 요즘은 사람들을 향해 좀 더 따뜻하게 웃고 말도 겸손하게 하는 스타일로 바뀌었다. 여기에 전에 없던 '자신감'까지 생겼다는 사실.
백재현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외모가 바뀐다고 인생이 뭐 그렇게 달라질까' 생각했었다고. 그래서 한 번도 성형수술을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런 그가 대대적인 외모 관리 프로젝트에 돌입한 건, 지난해 2월 우연히 받았던 건강검진 때문이다. 당시 118kg의 고도비만이었던 그는 건강검진 후 의사로부터 충격적인 말을 들었다. 백재현의 아버지가 당뇨 환자였고, 혈압으로 49세에 갑자기 돌아가셨다는 말을 들은 의사는 "지금은 아니지만 당신도 조만간 당뇨가 올 수 있고 그로 인해 심장병, 고혈압 등 합병증이 생길 수 있다"라며 "이대로 방치하면 앞으로 인생이 6년 남았다"라는 섬뜩한 경고를 했던 것.
아직 40대 초반, 한창때라고 생각했던 그에게 "6년 남았다"라는 의사의 경고는 마른하늘에 날벼락과도 같았다. 그래서 지난해 3월 식이 조절을 위해 '위밴드' 수술을 받았고, 수술 후 1주일 만에 5kg을 감량하는 효과를 봤다. 그러나 3개월 만에 요요현상이 왔고, 몸무게는 다시 120kg으로 되돌아갔다. 거대한 몸집은 일상생활에서 걷는 것조차 힘들게 했고, 만성피로감과 무기력증에 빠지게 만들었다.
그러던 지난해 6월 24일, 그를 패닉 상태로 만든 이른바 '백재현 트위터 사건'이 일어났다. KBS-2TV '불후의 명곡2'를 극찬하면서 MBC-TV의 '나는 가수다' 프로그램에 대한 발언이 논란이 된 것. 백재현은 '불후의 명곡2'가 '나는 가수다'를 베꼈다는 언론 보도에 대해 "경합 중의 가수 인터뷰나 청중 리액션은 당연한 카메라 플랜이며 '불후의 명곡2'는 '나는 가수다'처럼 인터뷰나 리액션이 과하지 않고 적당해서 전혀 다른 맛이었다"라며 솔직한 생각을 트위터에 올렸고, 그게 화근이 됐다. 이에 반발한 네티즌들의 악성 댓글은 인격 모독의 수준을 넘었고 크나큰 마음의 상처를 입은 백재현은 속으로 수십 번도 더 죽을 결심을 했다고 한다. 물론 그는 이와 같은 글을 올린 데 대해 큰 실수였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댓글은 잦아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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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너무 괴로워서 밤중에 차를 몰고 한강에 나가기도 했었다. '내가 죽으면 날 욕하던 수많은 네티즌은 뭐라고 할까'라며 자괴감에 빠지기도 했다. 그렇게 죽을 만큼 괴롭고 힘들었던 그 순간을 버텨냈던 백재현은 어느 날 '마지막으로 다시 용기를 내서 나를 변화시켜보자'라는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180도 다른 모습으로 변신하리라 결심했다.
요요현상 후 다이어트 못할 줄 알았다
일단 120kg이나 나가는 몸무게부터 해결해야 했다. 다행히 집 근처에 사는 유명 피트니스 전문가가 "같이 한번 해보자"라며 격려와 용기를 심어줬다. 사실 백재현은 10년 전에도 운동과 한방 다이어트를 병행해 체중 30kg을 감량한 적이 있다. 하지만 곧 요요현상이 왔기 때문에 또다시 체중 감량을 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할 수 있다"라는 트레이너의 말을 한번 믿어보기로 했다. 아침은 잡곡밥과 생선 2토막, 점심에도 잡곡밥과 반찬, 중간에 이온음료, 저녁에는 닭가슴살을 먹었다. 그리고 매일 유산소운동과 웨이트트레이닝 두세 시간을 병행했다. 트레이너에게 하루 식단과 운동 스케줄을 처음 받아보고는 '이 정도면 할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에는 눈에 보이는 음식은 모두 먹었어요. 음식의 주인이 누구인지는 신경 쓰지도 않고 일단 먹고 봤죠. 습관적으로 먹는 걸 즐겼던 것 같아요(웃음). 그런데 시간을 정해서 적게 먹고, 운동하는 것만으로 한 달에 4, 5kg이 빠지더라고요. 거짓말처럼 들리겠지만 시키는 대로 하니까 생각보다 힘들지 않았어요."
흔히 40kg을 감량하려면 엄청나게 힘들 거라고 생각하겠지만 그렇지 않았다. 그 이유는 바로 '1:1 레슨' 덕분이었다. 무작정 안 먹고 뛰기만 했던 과거 다이어트 방법과는 달리 트레이너가 제시한 체계적인 식단과 운동을 통해 살이 빠지는 게 눈에 보이면서 더욱 힘을 얻었다.
"저처럼 살이 많이 찐 사람들은 다이어트를 위해 돈을 많이 투자하잖아요. 저는 그런 사람들에게 혼자서 다이어트를 하지 말고, 꼭 전문 트레이너의 도움을 받으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저도 혼자 다이어트를 했다가 실패했잖아요. 한 번 실패하면 다시 다이어트를 시작할 용기가 생기지 않거든요. 돈 아깝다고 생각하지 마시고 자신을 위해서 꼭 투자해보세요. 먹을 것 적당히 먹으면서 힘들이지 않고 다이어트한 것 같아요."
운동을 하고 난 후 그의 체력은 놀라울 정도로 빨리 회복됐다. 혈당, 혈압 수치도 정상 수준으로 돌아왔고 몸도 가벼워졌다. 쇼핑하는 시간도 매우 즐겁게 바뀌었다. 과거에는 옷을 사러 쇼핑몰에 가도 맞는 사이즈가 있으면 후다닥 낚아채 돈만 지불하고 나왔는데, 이제는 옷을 고를 수 있는 선택의 폭이 넓어지면서 다른 사람들처럼 한 시간씩 옷을 고른다. 그러면서 '사람답게 사는 게 이런 거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양악수술의 고통, 매일 죽고 싶어
백재현의 변신은 40kg 감량에서 끝나지 않았다. 체중이 빠지자 평소 '돌출형'이었던 입이 더욱 도드라져 보였던 것. 결국 치아 교정을 위해 지난해 12월 치과를 찾았다. 단순한 치아 교정 치료를 하려고 했는데, 의사의 말은 충격적이었다. "백재현씨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유난히 이가 앞으로 뻗어 있어요. 이런 경우 치아 교정보다 '양악수술'이 더 효과적입니다."
백재현은 이때 양악수술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다. 최근 들어 많은 연예인들이 수술을 한다는 말도 들었다. 양악수술을 한 여성 지인 중에는 "아이 낳는 것보다 100배 아프다"라며 "하지 말라"라고 말렸고, 또 다른 지인은 "수술 후 인상이 달라지기 때문에 결과는 좋다"라며 적극 추천했다. 치과에 갔던 날부터 수술받기 전날까지 거의 3개월 동안 매일 고민했다. 수술이 너무 무서워서 '하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했다가 '아니야 할 수 있어'라며 마음이 왔다 갔다 했다. 그렇게 시간은 흘렀고 드디어 수술 당일, 수술은 예정대로 진행됐으며 수술 후의 고통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 만큼 엄청났다.
"입 안을 스테이플러로 수천 번 찍어놓은 듯한 느낌…. 더 심하게 말하면 면도칼을 수백 개 물고 있는 느낌이었어요. 고통이 극에 달해 매일 입원실에서 뛰어내려 죽고 싶었어요. 저는 수술이 다른 사람에 비해 세 배 정도 어려웠고, 입원 기간도 남보다 길어 3주나 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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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외모 지상주의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어요. 남자들도 면접을 보기 위해 성형을 한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저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성형이 저에게 이런 자신감을 심어줄지 몰랐어요."
120kg의 거구에 못생긴 개그맨의 대명사로 불렸던 그가 새로운 사람으로 다시 태어났다. 그는 이를 계기로 자신을 더욱 사랑할 줄 아는 사람으로 거듭나게 됐다고 한다.
결혼해서 어머니께 효도하고 싶어
백재현은 현재 뮤지컬 연출가로 활동하고 있다. 그가 연출한 창작 뮤지컬 '루나틱'은 2004년부터 현재까지 100만 명의 관객을 불러모은 스테디셀러 뮤지컬로 여전히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하지만 2004년 처음 뮤지컬을 무대에 올렸을 당시에는 관객이 한 명도 들지 않을 때도 많았고, 이 때문에 그는 자신의 전 재산을 모두 쏟아 부으면서 뮤지컬을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개그 콘서트'를 통해서 인기를 많이 얻었는데, 왜 갑자기 뮤지컬 연출에 뛰어들었는지 궁금해하는 분들도 많아요. 당시 저는 먹고살기 위해서 개그를 했지만, 소원은 순수예술을 하는 거였어요. 그래서 창작 뮤지컬에 도전장을 냈죠."
'루나틱'은 지난 10년 동안 국내 최초의 창작 뮤지컬로 한국 뮤지컬 역사에 큰 획을 그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와 같은 성과에 대해서 백재현은 무척이나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그의 청춘과 전 재산 그리고 열정을 아낌없이 바친 뮤지컬 연출은 여전히 그의 피를 뜨겁게 만든다. 하지만 앞으로는 다시 방송에 출연해 시청자들과 만날 생각도 하고 있다.
"저는 요즘 새로 태어난 기분이에요. 저에게 주어진 모든 일들을 겸손하게 받아들이고 최대한 열심히 하고 싶어요. 이제는 웃기는 것도, 울리는 것도 모두 잘할 수 있을 것 같거든요(웃음)."
뮤지컬을 만들며 생긴 빚 때문에 돈을 빌려다 쓸 때도 "나는 괜찮으니 직원들 월급부터 줘라"라고 하셨던 어머니는 백재현이 양악수술을 받은 후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며 "못생기게 낳아서 미안하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렇게 눈물을 보인 어머니께 백재현은 이제는 효도를 하고 싶다고.
"어머니가 제게 가장 원하는 건 빚 청산과 결혼인데, 최대한 빨리 그 소원을 이뤄드리고 싶어요. 외모는 물론 성격까지 좋아진 남자가 기다리고 있으니 여성분들 많은 관심 가져주세요(웃음)."
수많은 댓글에 상처받고 힘들어했던 백재현은 이제 사람들의 격려와 용기에 힘을 내고 있다. 달라진 외모만큼, 달라진 사람들의 시선만큼 그는 이제 행복 바이러스를 퍼뜨릴 예정이라고 한다.
<■글 / 김민주 기자 ■사진 / 박동민 ■장소 협조 / 더 가브리엘(02-322-7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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