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dVertiser

2012년 7월 4일 수요일

룰라의 막내 서른다섯 채리나의 성장통

여러모로 힘든 시기를 겪었다. 때가 때이니 만큼 혹여 본인의 의지와 다르게 해석될까 말 한마디, 행동 하나 조심하게 됐다. 인터뷰를 하던 날에도 그랬다. 시원시원한 대답들 사이로 고민의 흔적들이 느껴졌고 유쾌함 속에 진지함이 묻어났다. 언젠가 모두가 함께 웃을 날이 있을 거라 믿는 솔직한 채리나의 '당찬' 고백.

방황과 실패
다시 일어서기까지










"이렇게 일대일로 인터뷰를 하는게 8년 만이에요. 2006년에 유리 언니랑 '걸프렌즈'로 활동하며 앨범을 냈을 때도 기자회견만 했지, 인터뷰는 전혀 하지 않았거든요. 휴…, 무척 떨리네요."

룰라 시절 "바보 바보 바보야"를 외치던 비음 섞인 허스키한 목소리 그대로였다. 다만 까무잡잡했던 외모와 유난히 두건이 잘 어울리던 짧은 헤어스타일 탓에 성격 또한 씩씩할 것이라 예상했는데, 채리나(35)는 의외로 여성스러웠고 차분했다. 또 밝고 솔직했다.

"다들 그런 선입견을 갖고 있죠(웃음). 개인적으로는 데뷔 초반에 그것 때문에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어요. 당시 소속사에서는 신정환씨의 자리를 김송씨가 메워줬으면 좋겠다고 했대요. 그런데 송이 언니는 거절을 했고, 강원래 오빠의 추천으로 제가 룰라에 합류하게 된 거예요. 그러다 보니 저를 김송 언니 같은 이미지로 만들려고 길었던 머리카락도 자르게 했는데…, 그러면서 정체성이 없어졌어요. 제가 나름 학교에서 옷 잘 입는 애로 유명했거든요. 그런데 그런 제 모습이 아니니 친구들도 하나같이 '데뷔하더니 더 촌스러워졌다'라고 했죠. 더 이상 안 되겠다 싶어서 '3!4!' 하면서부터는 변화를 줬어요. 레게머리도 하고, 여성성을 강조했던 지현 언니랑은 차별화해서 뭐랄까. 소심한 반항? 그런데 지금 와서 보면 그 즈음부터 언니가 저를 견제를 했던 것 같아요. 질투도 하고. 그래서 그때 쫌 미워했어요(웃음)."

어릴 적부터 유난히 패션에 관심이 많았다. 전성기 시절엔 바쁜 일정을 소화하면서도 멤버들의 의상을 직접 코디네이션했고 연예인이 되지 않았다면 패션 관련 일을 했을 것 같다고 자신 있게 말할 정도다. 실력도 있었다. 그룹 쿨의 유리와 동업을 한 여성 의류 인터넷 쇼핑몰이 '대박'이 나며 업계에선 알아주는 패션 사업가로 자리를 잡았었고, 최근 오픈한 본인의 쇼핑몰 '날리나' 역시 조금씩 인지도를 넓히고 있다. 사업 이야기가 나오자 눈빛이 반짝거렸다.

"예전에 하던 쇼핑몰이 한 시간에 매출이 10억원이 넘었을 정도로 잘됐어요. 일하는 것도 즐거웠죠. 그러다 먼저 계약이 끝난 유리 언니가 새롭게 쇼핑몰을 내면서 저도 독립을 하게 됐는데, 하필이면 오픈 시기와 맞물려 (고)영욱 오빠 일이 터졌어요. 한쪽은 초상집인데 괜히 제가 나서는 건 아니다 싶어 홍보할 타이밍도 놓쳤죠. 그래도 제 철학이 '내 옷장을 채우는 마음으로 고객들의 옷을 생각하자'거든요. 내 스타일대로 하자, 하고는 방향을 틀었어요. 다행히 지금은 매출이 '껑충' 하고 뛰었죠."

물론 첫술에 배부르진 않았다. 언제나 '사람'이 어려웠다. 두 살이나 높여가며 남들보다 조금 빠른 사회생활을 시작한 그녀가 만나온 사람들은 매니저나 방송 관계자들이 전부. '바깥세상'에 대해 잘 몰랐기에 상대를 위한 배려가 배신으로 돌아왔을 때에도 '말하지 못할 사정이 있을 것이다'라고 믿었다.
"처음 사업이라고 했던 게 엔터테인먼트 쪽이었어요. 길이랑 개리의 도움을 받아 윤건 오빠와 둘이서 신인 가수를 키우는 일을 했죠. 결과요? 쫄딱, 망했어요. 가수를 해봤으니 더 잘 알 거라고 덤벼들었는데 생각보다 쉽지 않았어요. 지금은 어디에서 뭘 하고 있을지 모르겠으나 그 친구들은 저희가 지긋지긋할 거예요(웃음).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회사 홍보를 맡아주셨던 분이 공금을 들고 필리핀으로 도망을 갔어요. 휘청했죠. 각자의 길을 가자, 해서 건이 오빠는 브라운아이즈를, 저는 솔로 겸 걸프렌즈로 활동했어요."

내일을 알 수 없는 연예인의 숙명. 그랬기에 무대에만 '올인'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치킨 사업으로 눈을 돌렸지만 술을 좋아하지 않았던 그녀는 자신의 가게를 찾아오는 이들과 술자리에서 대화하는 것이 영 서먹했다. 이번에도 실패. 방황의 시간을 겪으며 가장 좋아하고, 잘하는 일이 무엇일까 고민했다. 바로 패션이었다.

"연예인 CEO라고 다르지 않아요. 가끔 이름만 빌려주시는 분들이 있단 이야기를 들었는데 저희 홈페이지에 가보면 아시겠지만 '박현주' 제 본명이 딱 적혀 있어요. 성격상 남들에게 잘 맡기지도 못해 시장 조사도, 스타일링도 다 관여해요. 물론 몸은 힘들죠. 그래도 제가 코디해놓은 대로 위아래 한 벌을 사가는 걸 보면 괜히 혼자 뿌듯한 것이, 무대 위에서만 느꼈던 희열을 비슷하게 느끼곤 해요(웃음). 아! 하나 제가 하지 않는 거 있어요. 아직 혼자 은행 일을 못 봐요. 새언니가 매니저이자 보호자로 저를 따라다니죠. 저희 새언니는 꼭 친언니 같아요. 완전 좋아요(웃음)."









멤버들의 사건사고
내 인생의 가장 큰 뉴스


1994년 데뷔해 레게풍 음악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그룹 룰라. 채리나는 신정환이 군 입대를 하면서부터 함께했다. 그러나 2집 '날개 잃은 천사'로 화려한 신고식을 한 그녀는 룰라 3집 앨범이 표절 시비에 휘말리며 첫 번째 고비를 겪었다. 이후 4집 앨범으로 재기에 성공, 명성을 되찾았지만 기쁨도 잠시. 메인 보컬이었던 김지현의 탈퇴, 남자 멤버들의 군 입대 등으로 사실상 공백기가 이어지면서 대중의 기억 속에서 흐려지기 시작했다. 네 명의 멤버들이 다시 한 무대에 선 건 2009년 말. 그 사이 남은 건 멤버들 간의 열애와 불화설, 임신설 등의 루머였다.

"가장 어이가 없고 기분이 나빴던 건 지현 언니 '왕따설'이었어요. 언니가 소속사와 문제가 있었던 건 사실이지만 멤버들하고는 정말 사이가 좋았거든요. 그리고 저랑 상민 오빠의 열애설은, 서로 불쾌하다고 했어요. 전요, 연애를 하면 한다고 말하는 스타일이에요. 없으면 소개 좀 해달라고도 하고요."
잠잠해질 만하니 또 한 차례 폭풍이 불어닥쳤다. 고영욱이 미성년자 성폭행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것. 출연 중인 프로그램을 통해 알게 된 연예인 지망생 10대 소녀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대중은 그를 향해 비난을 쏟아 부었다.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지켜봤고, 누구보다 아꼈던 사람이기에 그녀는 진위 여부를 떠나 마음이 아팠다.

"타이틀이 '룰라의 악재'였나? 그런 기사를 봤어요. 또 어떤 기사에서는 '사고 친 룰라의 남자들'이라고 묶어버렸고요. 문구 하나하나가 되게 자극적이었어요. 키보드로 사람을 죽인다고, 저희들도 상처받는데 말이죠."

미운 정 고운 정이 들어 이제는 구구절절이 털어놓지 않아도 서로를 이해한다. 하지만 얄팍한 인간의 마음이 어찌 서운함까지 감출 수 있을까. 묻는 사람도, 대답하는 사람도 쉽지 않은 이야기.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그녀가 말을 이었다.

"상민이 오빠는 사업 실패에 도박 사이트 개설, 정환 오빠는 해외 원정도박, 여기에 영욱 오빠의 성폭행 혐의…. 가장 큰 충격은 그런 내용에 '채리나는 뭐 하나 봤더니…' 뭐 그런 기사였어요. 마치 저까지 죄인이 된 듯한 기분이 들어 썩 유쾌하진 않았죠. 여기서 분명히 말하고 싶은 건 정환이 오빠는 컨츄리 꼬꼬로 활동한 시간이 훨씬 더 길어요. 룰라에서는 1집 때 잠깐 활동했고요. 그럼에도 저는, 멤버들 일이라면 발 벗고 나서는 게 맞는다고 생각해요.

Mnet '음악의 신'에 나간 것도 그래서였고요. 네, 전 욕 먹을 거 알고 나갔어요. 그리고 이건 진짜 솔직한 심정인데 지현 언니가 오지 않아 섭섭했어요. 작은 사건도 아닌데…. 영욱 오빠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혼자 애쓰는 상민 오빠를 저희가 도와줘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다 제 마음 같지 않은가 봐요. 사실 방송에는 잠깐 나오지만 실제 녹화 시간은 매우 길거든요. 그 촬영하고 몸살이 났어요. 도와준다는 표현도 좀 그렇지만 저는 언니 오빠들 일에 관한 건 한 번도 싫다고 한 적이 없어요. 그만큼 의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말 그대로 우여곡절의 세월.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했기에 억울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피할 수 없다면 있는 그대로, 여태껏 그랬듯 시간이 약이라는 말을 믿는 수밖에 없다.

"제게는 가족이니까요. 20년 가까이 되는 시간을 함께한 사람들이에요. 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고 하잖아요. 안타까운 마음을 어떻게 다 표현할 수 있을까요."

여전히 고영욱의 사건은 진행형이다. 그녀는 상황보다 사람을, 죄보다 상처를 보듬어주고 싶다.









"죄를 지으면 벌을 받는 게 맞고 아니라면 풀려날 것이고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어요. 무죄로 판결이 난다고 한들,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오빠의 이미지가 좋아질까요? 아니거든요. 본인도 다시 방송을 할 생각이 없다고 하더군요. 좋아하던 일을 하지 못하게 되면 우울증도 올 것이고, 전 그게 걱정이에요. 제가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그런 인간적인 부분을 위로해주고 싶어요."

부모님이 더 좋아하는 남친
편안함이 매력인 여자


모진 비바람에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준 '내' 사람들, 힘들 때마다 그녀의 손을 잡아준 건 가족이었다.

"한창 활동할 때,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지는 사람이 바로 저였어요. 남들은 삼재라고 하는 거 전 한 십재쯤 겪었거든요. 지금은 웃으며 말하지만 솔로 1집 첫 방송하던 날 새벽에 어머니께서 병원에 실려 가시고 또 어떤 날은 아버지께서 한쪽 눈을 실명하시고…. 누가 저한테 '이 마마걸, 파파걸아!' 해도 전 부정할 수 없을 거예요. 그만큼 가족이 소중해요. 아, 저희 어머니가 좀 직설적이시거든요. 가장 냉정한 모니터 요원이세요. 방송에서 말이 너무 빨랐다, 화면에 안 예쁘게 나오던데 코 수술 다시 하면 안 되겠니, 제발 다리 좀 벌리고 앉지 마라(웃음)…. 친구 같은 엄마예요."

그리고 남자친구. 그와는 친오빠의 소개로 만나게 됐는데 성실하고 믿음직스러운 모습에 이제는 그녀보다 부모님께서 더 좋아하신다고.

"하루는 오빠가 '중학교 때 친구가 무역 사업 일을 하고 있는데 네가 쇼핑몰 일을 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은 후배가 있더라. 만나보면 어떻겠느냐'라고 하더라고요. 내년쯤 중국 진출을 계획하고 있기도 했고, 나쁘지 않겠다 싶어 소개를 받았죠. 그러다가 이상 야릇한 분위기가 생기고(웃음), 연인이 됐답니다. 제가 굉장히 솔직하거든요. 꾸밈도 없고 진짜 편하게 해주니까, 남자친구가 그 모습에 반했대요."

교제 기간으로만 치면 아직 1년이 채 되지 않은 짧은 시간이지만 두 사람은 10년 차 커플보다 더 서로를 속속들이 잘 안다고 자부한다. 사업 파트너이자 동료로 그 관계의 폭을 넓혔기 때문.

"각자의 역할이 있어요. 저는 디자인을 하고, 의상을 받아오고, 뭐 그런 거고요. 남자친구는 홍보를 하고, 데이터와 관련된 계산 일을 하고. 음…. 덕분에 시너지 효과가 많이 나는 편이죠."

여느 커플이 그렇지 않겠냐마는 다른 세상에 살았던 두 사람의 조화는 쉽지 않았을 터. 아니나 다를까. 동갑내기 커플이라 다툼도 잦다고 이실직고를 한다. 동시에 주도권은 자신에게 있다고 덧붙였다.









"저는 방송국에서 소위 분칠하던 사람들과 함께했고, 그 사람은 유학생활을 오래 해서 연예인을 만나본 적도 없었대요. 연애도 연예인이랑만 했던 저와, 저 같은 여자가 적응이 안 되는 남자가 만났으니 싸움을 얼마나 했겠어요? 그 친구가 절 이겨 먹으려고 엄청 애를 쓰다가 결국엔 꼬랑지를 내리더라고요(웃음). 꿈틀했다가, 아차 싶었던 거죠. 사실 남자친구도 어린 나이에 일을 시작해서 자기 사업체도 있었고 그래서 주로 사람들을 리드하며 살아왔는데, 저에게 부림을 '당하는' 입장이 되니까 한동안 적응을 못하더라고요. 다행히 지금은 슬럼프를 잘 극복하고 원만하답니다(웃음)."

한때 건강에 적신호가 오기도 했던 그녀의 몸 상태를 가장 '민감하게' 체크하는 것도 남자친구의 몫이다. 그런 '닭살' 관심이 싫지 않은지 그녀가 새침하게 웃었다.

"그 당시 위암이라고 과장되게 기사가 나갔는데, 그 정도는 아니었어요. 그때 당시 여러 가지 일이 겹쳐서…. 스트레스성이라 잘 조절하고 그랬더니 조금씩 나아지더라고요. 그리고 아프면 안 되겠다 싶은 게, 남자친구가 더 걱정해요. 조금만 힘들어 보이면 무조건 쉬라고 하고. 안 그래도 연애 초반에 남자친구랑 하도 먹어서 살이 많이 쪘었어요. 일을 다시 시작하면서 돌아왔지만…."

다시 새 출발선에 선 채리나. 흔한 표현이지만 "일단은 결혼보다 일이 우선"이라는 말이 그 어느 때보다 설득력 있게 들렸다. 가수로서의 컴백도 그녀가 '조만간 풀어야 할 숙제'다.

"아직까지 같이 작업하자는 사람들이 있어 감사해요. 음악은 평생 저랑 함께 갈, 포기하고 싶지 않은 친구예요. 춤에 대한 자부심도 있어요. 그렇지만 음반을 낼 때 내더라도 일단 성공부터 하고 나서요. 외모, 성격가지고 비아냥거리는 건 참을 수 있어도 '돈 떨어졌느냐'라는 말은 용서가 안 되거든요. 그러기 위해선 더 열심히 살아야겠죠?(웃음)"

<■글 / 김지윤 기자 ■사진 / 안진형(프리랜서) ■의상 협찬 / 날리나(www.nalrina.com)>








































































댓글 없음:

댓글 쓰기

BidVertis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