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미디어=조원희의 로스트 하이웨이] 박진영은 1994년에 데뷔했다. 미쓰에이의 수지가 태어난 해다. 한국 연예계의 특성상 가수와 연기를 병행하는 이들이 많지만, 박진영은 데뷔 19년차에 처음으로 극장용 장편 영화의 주인공이 됐다. 개봉 후 결과는 그렇게 좋지 않다. 첫 주 7만여명의 관객, 최종 스코어는 15만~20만명 정도가 예측되는 숫자다. 흥행 실패라고 볼 수 있다.

문제는 박진영 주연의 < 5백만불의 사나이 > 는 그런 급조된 기획처럼 보이는 혐의점을 품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아주 오랫동안, 무려 19년이나 가요계에서 활동해온 '노장'이 첫 주연을 맡았음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은 선입견 속에서 이 영화를 봐야 했다. < 7급 공무원 > 이나 < 추노 > 등 굵직한 기획을 성공시킨 기획자인 동시에 각본가 천성일이라는 단단한 브랜드와 오랫동안 데뷔를 준비해 온 김익로 감독의 역량은 관객들에게 전혀 어필하지 못했다. 그 이유는 '박진영이라는 브랜드'가 관객들에게 오해를 샀기 때문이다.
박진영이 연기자로서의 가능성을 보인 것은 < 드림하이 > 에서였다. JYP가 처음으로 드라마 제작에 참여한 이 작품에서 사실상 박진영은 '드라마 외적인 홍보용의 사장님 카메오'인 것처럼 등장했지만 의외의 연기력을 보여주며 인정받았다. 박진영이 기대 이상의 연기력을 갖춘 이유도 있지만 중요한 것은 바로 '관객들이 생각하는 박진영 그 자체'를 선보인 캐릭터 때문이었다. 물론 '자기 자신을 연기'하는 것도 매우 어려운 부분이다. 어쨌든 첫 드라마 출연으로 호평을 받은 박진영은 자신감이 생겼고, '급조된 기획'이 아니라 확실한 브랜드를 지닌 기획자를 만나 결국 영화의 주연에 도전하기에 이른 것이다.
< 5백만불의 사나이 > 에서 박진영이 맡은 역할 '최영인'은 천성일 작가가 처음부터 박진영을 염두에 두고 창조한 캐릭터다. 문제는 거기서부터 시작된다. '박진영 그 자체'가 아니라 '박진영의 특성을 지닌 또 다른 인물'이라는 점이 문제를 발생시켰다. 만약 박진영을 제대로 활용할 생각을 했다면 관객들이 19년 동안 바라보며 익숙해져 있는 '박진영'을 아예 지워버릴 수 있는 캐릭터로 등장시켰어야 했다.

어차피 박진영이 주연한 영화에서 '가수 박진영'의 그림자를 지울 수 없다는 것이 현실이라면, 차라리 박진영이 주연한 영화에서 박진영은 '박진영 그 자체'여야 한다. < 5백만불의 사나이 > 를 통해서 박진영은 연기력의 측면에서 두 가지 화두를 던져 줬다. 첫째로 영화에 거듭 출연하다보면 지금의 다소 어색한 연기로부터 탈출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는 점. 둘째로는 '자기 자신을 연기할 때 가장 빛나는 연기자'라는 점이다.
첫 주연작이 흥행에 참패하면서, 박진영의 배우로서의 브랜드는 사뭇 낮아졌다. 박진영이 '연기자'로 재기하기 위해서는 다음 행보가 매우 중요한데, 완전한 변신을 통해 관객들이 '가수 박진영'임을 잊어버릴 수 있게 만들겠다는 허황된 야망보다는 '가수 박진영이 지니고 있는 여러 장점'을 극대화할 수 있는 역할을 맡아야 한다. 박진영은, 적어도 첫 영화에서는, 박진영이여야 했다.
칼럼니스트 조원희 owen_joe@entermedia.co.kr
[사진=영화 < 5백만불의 사나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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