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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5월 30일 수요일

그 입 좀 다물라

▶ 발효 간장의 막장시선

말 많은 주인공에게 관대한 영화라 그런지, 영화도 어지간히 말이 많은 편이다.

말 많은 사람은 비호감이다?

동의한다! 나 역시 말 많다고 타박깨나 받아왔고, 주변에도 '입만 열면 폭포수'인 분들 꽤 많아서 잘 안다. 말 많은 우리는 사실상 비호감이다. 원인은 '말의 내용이 진부해서'가 아니다. 우리의 말 속에는 깨알 같은 깨달음과 트렌드가 반영된 유머, 깊고 깊은 철학에 장미란 역사(力士)나 들 법한 사상의 무게가 세트로 들어 있었다. 침묵은 금이라지만, 어떤 말은 치솟은 금값보다 인생을 빛나게 하는 보석이었다. 그러다 보니 혼자 알기 아까웠고, 여기저기 뱉어왔고, 관성이 붙어 멈출 수가 없었고, 자연스럽게 양이 많아졌고, 비호감이 될 때까지 달렸던 것이다. 어쨌거나 청산유수 말하기의 끝에서 깨달은 건, 그 어떤 잠언도 대용량으로 발신하면 '수신거부'되기 딱 좋다는 것이다.

< 내 아내의 모든 것 > 에서 아내 정인(임수정) 역시 말[語]을 너무 사랑한 '애마부인'이었다. 그녀는 예쁜 얼굴에 섹시한 몸매, 수준급 요리 실력까지 갖추고 있었지만, 말 수천 마디로 남편 두현(이선균)을 미치게 만들었다. 영화를 10분만 봐도 두현이 7년 결혼생활을 어떻게 버텼나 싶을 정도로 정인의 말 세례는 '멘탈붕괴'를 가져온다. 사사건건 모든 일에, 듣건 말건 일방적으로 쏘아대는 몹쓸 화법에 비하면 독설과 불만투성이라는 점은 사실 큰 문제도 아니다.

정인이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하자마자 '독설 게스트'로 인기를 얻은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늘 그렇듯 까칠한 시선으로 세상만사를 꼬집어대지만, '할 말은 하자'는 명확한 콘셉트 하에 방송 포맷에 맞는 편집이 더해지니, 너도나도 듣고자 하는 인기 프로그램이 되지 않나. 실생활에서도 하루 딱 30분 '잔소리 코너'를 만들어 남편을 들볶았다면, 소심한 남편이 카사노바까지 고용하는 막장(?)을 달리지는 않았을 텐데.

여하튼 말의 양으로나 하는 방식으로나 독한 내용으로나, 정인은 화목한 가정을 유지하기에 어려운 인물이다.

그런데 영화는 이혼의 단초가 된 정인의 문제적 화법에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 정인은 결혼생활 내내 모진 말을 마음껏 하고 살았건만, 오히려 아내의 마음을 모르는 남편과 살아온 외로운 여인으로 그려진다. 반면, 7년간 '닥치고 청취'를 견디다 못해 '불륜 청부'를 한 남편은 말로 풀면 될 일을 엉뚱한 꼼수로 풀려다 이혼 당할 뻔한 남자에서 멈춘다.

그러니 재결합 과정에서 남편은 아내에게 미안하다며 붙잡고, 여자는 처음 만났을 때가 생각난다며 붙잡는다. 이혼까지 달렸던 해프닝을 통해 그들은 무엇을 깨달았을까. 갈등 없이 오래오래 잘사는 방법을 찾아내긴 했나? 그들의 재결합을 축하해 줄 수가 없는 이유다. 부부가 성격차이로 갈등을 겪고 결론적으로 화해에 이르렀다면, 그 과정에는 반드시 각자의 자아성찰이 있어야 할 것이다. 자기 선에서 풀 일을 남(男)에게 맡긴 남편이 용서를 구해야 한다면, 예쁜 말로 풀 일을 사납게 몰아붙인 아내에게도 비폭력 대화 강좌를 등록시켜야 한다. 로맨틱 코미디 영화답게, 어영부영 '다시 살기로 했대!'라는 결론은 '서로 맞춰가며 살고 있는' 기혼 남녀 관객의 비웃음만 살 뿐이다.

말 많은 주인공에게 관대한 영화라 그런지, 영화도 어지간히 말이 많은 편이다. 일단 대사가 많다.(어떤 이는 역대 영화 중 가장 대사가 많은 영화라고 했다.) 사건이 진행되는 동안 정인의 대사가 속사포처럼 쏟아지는데, 그 바람에 화면을 놓치거나 대사를 놓치는 경우도 있었다. 비주얼도, 사건도 넘친다. 성기(류승룡)의 집은 항상 수많은 소품으로 꽉꽉 차 있고, 정인은 항상 다채로운 요리를 내온다. 자잘한 에피소드가 늘 다른 장소에서 일어난다. 인물들의 액션도 풍성하다. 남자 주인공들의 과장된 연기와 몸 개그만도 정신없는데 조연과 엑스트라(특히 성기에게 반한 다국적 여성들)까지 존재감을 드러내려고 애쓴다.

이 수많은 요소가 제법 잘 버무려진 전반부는 뮤지컬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하지만 쏟아지는 이야기와 이미지는 러닝 타임 한 시간 반을 지나는 순간 확연히 지루해지고, 나중에는 '아직도 보여줄 게 있어?'싶은 부담으로 다가온다. 좀 적게 말하고, 좀 덜 보여주면서 관객과 '밀당'했다면 어땠을까. 고백은 한 문장으로 압축된 영화 대사나 샹송 가사로 전하고, 중요한 대목에서는 상대가 더욱 듣고 싶도록 말끝을 흐리며, 결정적 순간에는 소 젓 짜기나 회전목마 옆에서 타기 같은 보디랭귀지로 속삭였던 카사노바 성기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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