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윤고은 기자 = "이거 오늘 처음 말하는 건데 죽을 고비를 넘기고 나니 인생을 돌아보게 되네요. 조금 쉬면서 충전하라는 뜻 같아요. 다시 새롭게 출발하라는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탤런트 진이한(34)이 최근 죽을 고비를 넘겼다.




MBC '닥터진'의 마지막 2회 방송을 남겨둔 시점이었다.
그런데 말 그대로 '하느님이 보우하사' 그는 이렇다 할 큰 부상이 없었다. 충격을 받은 후유증은 다소 있었고 이후 어떻게 드라마를 마무리했는지 모르지만 천운으로 더 큰 화는 피할 수 있었다.
"대사가 잘 안 외워지고 멀미 증상에 나타나는 등 한동안 고생 좀 했어요. 하지만 외상도 없고 CT 등을 찍어봤는데도 별것 없었어요. 천만다행이죠."
하지만 이 사고로 그가 통원 치료 등을 하면서 예정됐던 인터뷰는 드라마 종영 한 달 후에야 이뤄졌다.
지난 6일 을지로에서 그를 만났다.
진이한은 "내가 운이 좋긴 좋은 것 같다. 그런데 그간은 운이 있어도 늘 5%씩 부족하다는 느낌이 있었는데 이번에 교통사고에서 멀쩡한 걸 보니 그 부족했던 운이 다 모여서 날 구한 것 같다"며 웃었다.
실제로 그는 데뷔부터 '닥터 진'에 이르기까지 운이 좋았다.
미술학도였고 연기에 대해서는 생각도 하지 않았던 그는 2002년 어느 날 비언어극 'UFO'의 오디션에 도전하면서 인생이 바뀌게 된다.
"제가 춤을 잘 춰요. 어려서부터 춤깨나 추는 아이로 소문나서 가수 제안도 숱하게 받았어요. 군 제대 후에는 용돈 벌이를 하려고 각종 춤 대회에 출전해서 상금을 받았어요. 하지만 춤을 직업으로 삼을 생각은 없었어요. 굳이 직업이 아니어도 전 제가 춤에서 최고라고 자부했거든요.(웃음) 그러다 'UFO' 오디션 공고를 보게 됐는데 대사는 없고 춤을 잘 추면 된다고 해서 도전해봤어요."
그는 거기서 진짜 춤꾼을 보게 되면서 처음으로 기가 죽는 경험을 했다고 한다. 3차 오디션까지 붙었다가 최종에서 떨어진 그는 그러나 패자부활전의 기회를 얻어 'UFO'에 출연하게 된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개그맨 출신 연극 제작자 백재현의 눈에 띄어 '루나틱'에서는 단번에 대사가 많은 배역을 따낸다.
"그때까지만 해도 연기는 쥐뿔도 몰랐죠. 그래도 난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어요. 겁 없이 거만했죠.(웃음) 처음 연습할 때 선배들이 '뭐 이런 놈이 연기하러 왔냐'며 대본을 집어던지기도 했죠. 오기로 밤샘 연습을 하면서 무대에 섰습니다."
한마디로 '폼생폼사' 인생. 그런데 운이 따랐고 그는 자신에게 오는 운을 기회로 살려 오늘에 이르렀다.
"제 안에 있는 끼를 삭히는 게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한번 해보자 싶었죠."
하지만 뮤지컬계에서 별명이 '싸가지'였고 자존심 하나에 죽고 사는 인생인 그는 도중 '수가 틀려' 한차례 일을 '때려치우기'도 했다. 1년간 폐인처럼 지내가 다시 각오를 다지고 돌아온 건 2007년 KBS '한성별곡'을 통해서다.
"역시 운이 좋았죠.(웃음) 당시 오디션에서 난 가진 게 없으니 있는 그대로의 날 봐달라고 했는데 감독님이 '뭐 이런 놈이 있나?'라면서도 잘 봐주셨어요. 큰 모험이었을 텐데 덜컥 제게 주인공을 맡기셨죠."
이후 '누구세요?' '내 인생의 황금기' '바람불어 좋은 날' '몽땅 내 사랑' '애정만만세' '왔어 왔어 제대로 왔어'를 거쳐 '닥터진'까지 그는 줄기차게 달려왔고 그 과정에서 연기력을 조금씩 쌓아왔다. 특히 지난 2년은 일주일에 고작 10시간밖에 못 잘 만큼 바쁜 스케줄을 소화하기도 했다.
시트콤 '몽땅 내 사랑'를 통해서는 코미디의 재능을 뽐내며 주목받았다. 진지한 표정으로 펼치는 코믹연기는 진이한이라는 배우를 다시 보게 만들었고 이는 두 번째 시트콤 '왔어…'로 이어졌다.
"제가 워낙 개구쟁이 같아 '몽땅 내 사랑' 하면서 정말 즐거웠습니다. 애드리브의 재미를 알았는데 '왔어…' 때는 아예 제 연기의 70%가 애드리브였을 정도였어요."
하지만 그는 한가지 이미지에 머물지 않았다. 시청률이 높았던 '애정만만세'에서는 지독한 악역을 소화했고 '닥터진'에서는 개혁을 꿈꾸는 열혈 선비를 연기했다.
"'애정만만세'는 처음에는 악역이 아니었는데 극 전개상 캐릭터가 너무 심하게 악역으로 바뀌면서 솔직히 힘들었어요. 하지만 배우는 어떤 연기도 해야 하는 거잖아요. 돌아보면 그 역도 제게 도움이 많이 된 것 같아요. '닥터진'은 도중에 장렬하게 전사하는 것이었는데 끝까지 살아남았어요. 그래서 캐릭터의 색깔이 퇴색된 감이 있어 아쉬웠지만 그 역시도 얻은 게 있다고 생각합니다."
"소극장에서 연기하던 시절부터 30년 후에도 이 관객들 앞에서 연기하고 있다면 정말 행복한 인생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그는 "연기가 고프다. 너무 하고 싶어서 '근질'거린다"며 웃었다.
"얼결에 데뷔해 쉬지 않고 달려왔는데 이번에 큰 사고를 당하면서 잠시 절 돌아볼 수 있게 됐어요. 당분간 몸을 추스르면서 승부욕을 새롭게 불태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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