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함에서 특별함을 발견하는 부부
짧은 인사 후 조용히 자리를 뜬 남편 조기영(44) 시인은 아내 고민정(33) 아나운서가 인터뷰를 하는 동안 능숙한 솜씨로 유모차를 밀고 당기며 아들과 오붓한 시간을 보냈다. 단 한 번의 칭얼거림도 없이 아빠의 품에 안겨 있는 9개월 된 아들의 표정에는 새삼스럽지도, 낯설지도 않은 평화로움이 묻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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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대학교 중어중문학과 선후배 사이로 만나 열한 살이라는 나이 차이를 극복한 두 사람. 많은 여자 아나운서들이 '대단한' 배경이나 직업을 가진 남자들과의 결혼을 당연한 수순으로 밟고 있는 상황에서 흔들림 없이 해피엔딩을 맞은 이들의 러브 스토리는 이미 유명한 일화다. 한 편의 멜로영화를 찍듯 살아온 두 사람의 순애보는 지난해 12월 7일, 특별한 선물인 은산(1)이와 만나면서 더욱 두터워졌는데, 당연한 일이 이슈가 되는 것이 오히려 더 이상하다는 듯 그녀가 앳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어휴, 왜요. 저희 부부도 아이 때문에 엄청 싸워요(웃음). 방법의 차이에서 오는 다툼이랄까. 둘 다 잘 모르고 정답이란 것이 없으니까 자기 말이 옳다고 주장하고. 진짜 아무것도 아닌 사소한 일에 고집부리다 빈정상한 적도 많아요. 그렇지만 아들은 해맑게 웃고 있고. 그럴 때마다 아, 어른들이 뭐 하는 건가, 그런 생각이 들곤 하죠(웃음)."
결혼 6년 만에 얻은 아이. 그 아이가 주는 기쁨, 행복, 사랑만으로 뭐든지 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야무지게 각오를 다지곤 했다. 하지만 첫 단추부터 만만치 않았던 것이 현실. 가만히 앉아 있는 것조차 힘들었던 입덧 탓에 그녀는 당시 진행하던 아침 방송까지 하차해야 했다.
"아, 입덧의 기분은 말로 설명할 수가 없어요. 술을 진탕 먹고 그 다음 날 속 풀기 전의 상태라고 해야 하나(웃음)? 그래도 숙취는 오늘만 지나면 괜찮아질 거야 하는 희망이라도 있죠. 입덧은 열 달 내내 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하니 그 기약 없음에 몰려오는 막막함이란…."
건강하게만 태어나달라고, 그 이상을 바라는 것은 욕심일 터이니 다른 건 하늘의 뜻에 맡기겠다고 청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에는 남편을 꼭 빼닮은 아들이었으면 하는 소망이 있었다. 때문에 은산이가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고 난 뒤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컸다.
"아들 딸 상관없다고 하면서도 남편은 아들과 같이 공놀이를 하고 싶어 했어요. 저는 남편이 아이와 그렇게 같이 노는 모습을 보고 싶었고요. 주변에서는 엄마에겐 딸이 있어야 한다고 하던데 만약에 한 명을 더 낳는다면 그때도 아들을 낳고 싶어요. 제가 두 오빠 밑에서 자라서 그런지(웃음) 남매보다 형제나 자매가 그렇게 부럽더라고요. 하지만 아직은 둘째 계획이 없어요. 두 남자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으니까요(웃음)."
그녀는 아들과의 첫 만남을 "꿈같은 일"이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감동보다 앞섰던 출산의 고통. 다른 산모들에 비해 진통도 짧았고, 비교적 순산을 한 편이었지만 '다시 반복할 엄두가 나지 않을 만큼' 힘들었다.
"가족 분만실이어서 남편이 계속 옆에 있어줬는데 TV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면 '이 남자 때문에 내가 이렇게 고통스러워' 하면서 남편 머리끄덩이 잡아당기고 그러잖아요. 전 그 정도는 아니었지만(웃음) 죽을 만큼 힘들었어요. 다만 처음 은산이를 품에 안았을 때, 굉장한 울림이 있을 거라고 기대했는데 의외로 덤덤하더라고요. 물론 아이가 건강하게 태어났음에 감사했고, 상상이 아닌 내 눈앞에 아이가 있다는 것에 대한 신비로움에 많이 울기는 했지만 솔직하게 아이와의 애착관계는 그 후로도 그냥 그랬어요. 그렇게 백일쯤 지났나? 핏덩이였던 아이가 나를 보고 웃고, 내가 엄마인 걸 알고 그러는데 그제야 '아, 내가 이 아이를 낳았구나' 하는 뭉클함이 올라오더라고요. 정말 신기했어요."
고슴도치 엄마의 꼭 닮은 아들
각자의 직업을 염두에 두고 2005년 한글날 백년가약을 맺은 부부는 아들의 이름 역시 한글로 짓고 싶었다. 하지만 출생과 함께 신고해야 할 각종 서류에 들어갈 한자 이름 난도 무시할 수 없었던 탓에 이들은 몇 날 며칠을 고민했고 마침내 '은산'이라는 이름을 선택했다.
"이름을 짓는 것도 정말 큰일이었어요. 예전부터 저는 아들을 낳으면 '산'이라고 부르고 싶었는데 남편의 성이 조 씨니까 조산이 되잖아요(웃음). 결국 은은할 은(誾)자를 더해 조은산이라고 짓게 됐죠. 발음상으로 '좋은 산'에 가깝고, 실제로도 겨울에 태어났으니 흰 눈이 덮인 은빛 산이란 뜻도 되고. 저는 아이가 산처럼 컸으면 좋겠어요."
고개를 갸우뚱했을 뿐인데 "물 줄까?", 눈을 한 번 감았을 뿐인데 "졸리니?"라고 속삭이는 둘만의 암호. 아이 용품이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 기저귀 가방. 출산 전 몸무게로 돌아왔지만 어딘가 모르게 달라진 체형. 엄마가 된 그녀의 변화는 사소한 것에서부터 시작됐다.
"임신하고 12, 13kg 정도 살이 쪘었어요. 아이는 3.2kg으로 태어났는데 한참동안 몸무게가 그 이상 빠지질 않아 걱정했죠. 다행히 지금은 예전 체중으로 돌아왔는데, 얼굴이 유난히 말라 보이는지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은 '살 좀 찌우라'고 해요. 그럴 형편은 절대 아닌데 말이죠(웃음)."
때와 장소를 불문하고 아이의 '밥때'를 기억하는 본능. 불현듯 이제는 정말 아줌마가 됐구나 하는 깨달음도 이전에는 없던 감정이다.
"민망하거나 부끄럽다는 생각이 점점 더 줄어들어요. 그러면 안 되는데(웃음). 모유 수유를 하다 보면 젖병에 우유가 차오르듯 모유가 가슴에 차는 것이 느껴지곤 해요. 대부분의 엄마들이 그렇겠지만 저 역시 아이가 조금 보챈다, 혹은 밥 먹을 시간이 됐다 하면 습관적으로 가슴에 손이 가죠. 어떤 날은 옆에 남자분이 앉아 계신데도 버릇이 돼서…. 저도 깜짝깜짝 놀란다니까요(웃음). 그리고 예전에는 살이 찌면 안 된다는 걱정에 조금 덜 먹고 그랬는데 모유 수유를 하면서부터는 그런 걱정도 줄었어요. 무척 행복해요."
좋은 날만 있었던 건 아니다. 1년이 채 안 되는 찰나의 시간 속에서도 가슴을 쓸어내린 순간을 여러 번 경험했다. 그때마다 부부는 아이 앞에서는 절대로 냉정해질 수 없는 것이 부모 마음임을 새삼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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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보는 기자에게도 아낌없는 미소를 퍼주는 아이. 또랑또랑한 눈망울. 시야에서 엄마가 사라짐과 동시에 울음을 터뜨리는 또래에 비해 온순한 성격. 복덩이가 따로 없다.
"제가 맛있는 걸 먹을 때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는 버릇이 있는데, 우리 아들도 그래요. 정말 신기하죠? 또 제가 어릴 적에 좀 남자아이 같았거든요. 성형을 했다는 루머가 있었을 정도로(웃음). 백일 사진을 보면 은산이랑 똑같아요. 혼자서도 잘 놀고, 잘 안 울고. 시어머니나 친정어머니께서 종종 '이런 아이는 열 명이라도 키우겠다'라고 말씀하시죠. 그럴 때마다 저희 부부는 '원래 이런 것이 아니라 잘 키웠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고요(웃음)."
오고간 질문과 대답의 말미엔 꼭 아들 칭찬이 따라붙었다. 고슴도치 엄마의 아들 자랑은 그 후로도 계속 됐는데, 그때마다 쏟아지는 그녀의 미소는 아름다웠다.
"우는 아이 달래는 저만의 비결 같은 건 없어요. 아직 하나밖에 안 키워봐서(웃음). 아, 책을 종종 읽어주곤 해요. 아이들 수준에 맞춰 동화책을 읽어줘도 좋겠지만 아직은 못 알아들을 것 같아서 전 제가 읽고 싶은 걸 읽어주는 편이에요. 대신 시사 주간지 보면서도 재미있게 마치 동화를 읽듯이(웃음). 산후조리할 땐 박경철의 「자기혁명」을 읽었는데, 그걸 본 남편이 막 웃더라고요. 그래서 그런가, 은산이는 제가 책 읽어주는 걸 좋아해요. 장난감이 있어도 꼭 책을 집어요."
아낌없이 주는 아이와 친구가 되고 싶은 부모
수백 대 일의 경쟁률을 뚫고 아나운서의 자리에 올라 당당하게 카메라 앞에 섰다. 하지만 2004년 입사 후 8년의 시간보다 더 숨 가쁘게 달려온 지난 9개월. 복직을 앞둔 고민정 아나운서의 솔직한 심정은 기대 반 두려움 반이다.
"모유 수유를 하다 보니 어딜 가도 꼭 아이와 같이 가야 하고 친구 한 번 만나러 가는 것도 힘들어서 그럴 땐 차라리 회사를 갔으면 했는데(웃음), 그때를 제외하고는 아이랑 있는 것이 정말 좋아요. 한편으로는 아이한테 아나운서 엄마로서 멋지게 방송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욕심도 있고. 회사에 무척 나가고 싶다가도 가기 싫고 그러네요."
주저하는 마음을 다잡기까지 큰 힘이 된 건 남편의 든든한 응원이었다. 그녀의 빈자리도 부족함 없이 채워줄 친구 같은 아빠가 있음에 그나마 마음의 짐을 덜었다고.
"제 엄마는 제가 어릴 적에 일을 하셔서 항상 집에 안 계셨거든요. 일종의 애정 결핍이 있어 지금도 남편이 상갓집에 가거나 일 때문에 멀리 가게 되어 혼자 집에 있어야 하는 상황이 되면 잘 못 견디겠어요. 그래서 제 아이는 그런 부재를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늘 생각했는데…. 정말 다행인 것이 남편은 집에서 작업을 하는 사람이잖아요. 남편도 아이가 두 돌이 될 때까진 아이를 키우는 일에 전념해주겠다고 흔쾌히 동의했고요. 그래서 마음이 놓여요."
아이의 작은 행동에 이유 없는 웃음을 짓는가 하면 설명할 수 없는 서러움에 눈물이 흐른다. 아이를 통해 더 넓은 세상을 보게 됐고 아이로 인해 더 깊은 사랑을 배웠다. 아무 조건 없이 자신만을 바라보고 의지하는 아이에게서 때때로 '내리사랑' 못지않은 따뜻함까지 느낀다.
"아이에게 물질적으로 모든 걸 해주는 엄마는 되고 싶지 않아요. 그런 물질이 있으면 남편과 쓸 것이고요(웃음). 가끔씩 남편과 아이가 나중에 어떤 일을 하면 좋을까 장난처럼 이야기를 해요. 남편은 운동 선수가 됐으면 좋겠다고 하는데 저는 과학자나 연구하는 사람, 학자가 됐음 해요. 하지만 우리 모두가 그런 과정을 겪어왔듯이 부모가 아무리 뭐 하라고 해도 내가 싫으면 안 하는 것이 자식들이잖아요(웃음). 시인이나 아나운서가 된다면? 음…, 남자 아나운서들의 성취감이 어떤지 잘 몰라서요. 남편은 은산이가 작가가 되어도 좋겠다고 하는데, 저는 반대예요. 힘든 직업이잖아요(웃음). 그러다가도 '훌륭한 글을 쓰는 사람이면 당신 같은 지혜로운 여자를 만날 수 있으니까 괜찮아' 하는 남편의 말에 사르르 녹아버리고(웃음)."
아이와의 동행 길은 서툴지라도 결코 서두르지는 않을 것이다. 멋진 여성, 존경받는 엄마가 되는 것이 그녀가 새롭게 세운 장기 플랜이다.
"엄마들이 아이들과 트러블이 생기는 건 자기 욕심을 버리지 못해서인 것 같아요. 전 임신했을 때부터 항상 마음속으로 다짐했어요. 10년 동안만 내 아이다. 그 뒤엔 내 아이가 아니다(웃음). 다행히 훗날 아들이 여자친구를 데리고 와도 질투하지 않을 만큼 요즘 큰 사랑을 받고 있어요. 그건 남편이 주는 것과는 또 다른 차원이에요(웃음)."
<■글 / 김지윤 기자 ■사진 / 민영주 ■장소 협찬 / 해빛(02-734-9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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